오늘같은 밤,
겨울의 입구에서 불어오는 시린 바람은
런던의 워털루역 앞 길고 어둡고 지린내나는 지하보도의 벽에
낙서처럼 남겨진 이름 모를 시(詩)를 생각나게 한다.


I am not afraid as I descend,
step by step, leaving behind the salt wind
blowing up the corrugated river...
(우리는 저 암흑으로 내려간다 하더라도 두려워 않으리...)


사실 미네르바 개인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글을 안 쓰려 했다.


그런데...
어떤 누구에게서 한밤중 전화가 걸려왔다.
다짜고짜 K란 이름을 아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왜?
극비사항인데... K가 바로 아고라의 미네르바 라는군...


K... 01001011...


모교 동기 중에 그런 이름의 희미한 얼굴이 스쳐갔다.
삼십년도 훨씬 넘은 오래 전의 추억이다.
내 자신 이십여년 넘게 외국생활을 했고,
K 또한 오랫동안 해외에서 일했다는 말을 얼핏 들었다.
아마 런던 시티 어디에선가 마주칠 기회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점심 때면 외로운 이방인이 영란은행 앞 킹 윌리암 거리를 따라 내려와
캐논 거리 코너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다이어트 코크를 빨대로 마시며
진로 소주를 병 째 빨아대던 그 겁없던 시절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근처 다이와 보험회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일본인 젊은 무리들을
동경 반 경멸 반 흘려보며 한국인으로서의 소외감을 잊으려고
로이터 터미널에 빠져들려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샌드위치 하나 싸들고 런던 브릿지 위에서
남쪽 강변의 미네르바 하우스를 바라보며 미래를 꿈꿨는지도...
내가 워털루 다리 밑 사우드 뱅크의 노점에서 헌 책을 뒤적이고 있을때
K는 사우드와크 다리 양쪽 LIFFE와 FT에서
텔렉스와 컴퓨터와 마이크로필름과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런던의 두 에트랑제가 아마 그 시간 테임즈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십 수년이 또 지나고...
나는 아직도 부(富)란 무엇이냐는 형이상학의 질문에서
수도원의 늙은 유폐자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K는 그동안 대한민국 재계의 유명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막대한 재력과 그에 걸맞는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를 수 있는
그런 자리에 그가 올라가 있다고 했다.
또 그는 훌륭한 사회활동도 많이 하여 존경받는 기업인이라고 했다.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고 그러지도 않았다.
구태여 그래야 할 이유나 핑계도 없었다.
동창이란 것 외에 우리의 관심이나 특히 처지는 너무나 달랐다.
나는 옛 친구들과 만날 기회를 일부러 피하며 살았지만,
그는 옛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없이 그렇게 쫒기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던 날들...
아고라에서 미네르바의 화신을 만난다.
십 수년 전...
테임즈 강변 사우드와크의 미네르바 하우스를 떠올린다.
아테나의 파르테논을 연상시키기에는
너무나 소비에트적인 현대식 건물과 우중충한 거리.
의미도 모른 채 예쁜 이름이 참 안 어울리는구나 생각했다.
마치 낡은 화력발전소 속에 숨어있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처럼
무엇인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갈등과 타협이 이해할 수 없이 얽혀진
그런 모순의, 그런 도시의, 그런 건축의, 그런 이름 이구나...
라는 느낌을 흘려 버리고 지나갔다.
그런 불가사이의 미네르바를 여기 아고라에서 다시 만난다.
좌절과 희망과 평화와 복수와 수학과 역사가 동시에, 모두,
엄청난 파괴력으로 폭발하는 그의 글을.


K는 이제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지혜와 용기의 수호신이었다.


삼십여년전 그의 모습을 떠올리려 애써본다.
어린 시절 6년의 긴 시간을 같이 부대끼며 지냈겠지만,
말 한마디 나눠본 기억도 별로 없다.
이른바 명문학교의 얼마 안되는 수의 학생들 사이에서도
그는 너무나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아마 다른 아이들보다는 나이가 좀 더 많았던지,
좀 더 촌구석에 살았던지,
좀 더 생활이 어려웠던지 (당시는 모두 못살았지만), 아뭏든...
무척 어른스러운 아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K를 미네르바의 암호에서 해독한다.
토끼처럼 유순했던 아이가 어느날 외로운 늑대가 되어 돌아왔다.
비밀의 가면 뒤에서 그러나 화려한 조명 아래서
현란한 검술을 뽐내는 몽테 크리스토 백작...
또는 고탐 시의 억만장자 흑기사 뱃트맨이 어울릴까.
무엇이 그를 정의의 분노에 불타게 했을까.
지금 그 나이와 그 명성에...
뭇 사람들이 선망과 질시를 함께 느껴야 할
지금 그처럼 높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서...
그가 속한 하이 소사이어티의 남들은
탐욕의 절정에서 더 많은 돈 더 많은 힘을 가지기 위해
금력과 권력을 휘둘러 힘없는 자를 탄압하며 갈취하고 있는데,
그는 그 모든 풍요와 안락의 유혹을 내던지고,
그가 말하는 저 아래 천민의 편에 서서 저 아래 천민을 위하여
자기가 그 정점에 앉아 있는 자기 발 아래의 피라미드를 부수고 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정열과 노력으로...
왜?
모든 것을 가져본 자의 한낱 변덕일까?
청년 시절 하지 못한 초로의 때늦은 반항일까?
아니면...

- 슘페터가 말했듯이 -

자본주의 시장경제 진화의 극대점에서 드디어
마르크스적 사회주의의 이상치에 도달했기 때문일까?

체제 내적 모순의 변증법적 완성일까?
자기 자신을 불살라 없애는 생산적 에로스의 충동일까?
생명의 원죄를 드디어 깨달은 종교적 속죄 의식일까?
아니면... 저 멀리 아마존 숲 속 한 마리 나비의 날개 짓이
슈퍼 컴퓨터 미네르바의 프로그램에 삑. 삑.. 삑...
치명적인 버그를 일으키기라도 했단 말일까?


왜 K는 자기가 있는 이너서클의 고리를 스스로 끊으려 할까?


70년대 폭압과 혼돈의 대학시절,
민주와 자유의 선구적 외침 속에서 나는 K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 그의 이상주의는 철저한 현실주의 밑에 숨겨져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는 나와 같이 영원히 무능한 회색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삼십여년의 세월이 지난 후 이제,
우리의 아이들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이가 된 이제,
K는 미네르바가 되어 돌아왔다.


우리는 중학입시를 경험한 세대이다.


나는 국민학생의 - 당시에는 국민학교라 불렀다 - 어린 나이에
밤 12시까지 중학교 입학시험 준비에 시달리는
내 또래 소녀의 어두운 포토 리포르타쥬를,
어른들이 보는 신동아에서 읽은 적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비틀즈와 월남전과 두브체크와 꽁방디를 거쳐
오일쇼크와 검은구월단과 아라파트와 바더 마인호프와
그리고 딥퍼플과 마리화나의 시대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식민주의 사회의 이른바 자유경쟁은
우리를 능력 껏 뛰게 해주는 자유가 아니라
발을 얽맨 노예의 사슬이었고
시험은 우리에게서 상상과 비판을 박탈하는 강제노동이었다.
차라리 군사교육 교련은 운동장에 나와 공기를 마시고
동무들과 장난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감옥은 오히려 자유에의 투지를 키우는 장소이며
전체주의는 내일에의 희망을 지울 수 없다.
우리들의 작은 꿈,
커서 어른이 되면 좋은 나라 만들거야...
우리의 아이들이 이런 지옥같은 세상에서 살게 하지 않을 거라고.
전쟁도 없고 독재도 없는 나라,
미군 트럭 뒤를 쫒아 뛰며 지아이에게 기브 미 껌,
쵸콜렛 냠냠 손 내밀지 않는 나라,
저 하늘에도 슬픔이 영화 속의 이윤복 같은 어린이가 없는 나라,
언젠가 우리는 그런 나라 만들어 행복하게 살거야 라고.


우리 세대가 지난 삼십여년간 이룬 것은
그러나 어린 시절의 꿈나라가 아니었다.
더 살벌한 경쟁과 더 잔인한 교육과,
더 오만하고 더 탐욕스런 부자들과,
더 가난하고 더 불쌍해진 아이들과 노인들이,
아파트라 불리우는 콩크리트와 플라스틱의 쓰레기 속에서
생존의 무자비한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변태의 사회.
정치인들은 더 추해졌으며, 공직자들은 더 썩었으며,
그 부정과 부패를 교활히 감추기 위해
온갖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법과 규제와 관습과 편견이
도저히 풀 수 없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처럼
인간적인 사회의 발전을 얽어맨 그런 세상.
어느날 삼십년간 잊어왔던 내 모습을 봤을때
거울 앞에 서있는 것은 비겁하고 무식한 돼지였다.


누구를 위해서 우리는 살아왔나... 과연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남겨주겠다는
거짓 희망과 거짓 지식으로 우리 자신을 속여왔다.
현실주의의 미명 아래 힘을 휘두르는 자에게 아부하고
높은 자에게 가까이 붙기 위해 그들에게 조공을 바치며
그들의 권위와 폭정을 강화시키는 것이
우리 모두를 노예사회에 종속시킴을 뻔히 알면서도,
마치 그것이 나라 사랑이요 나라 발전에 이바지함이며
장차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줄 유산이라 믿으려 해왔다.
그러나 나의 애국은 나의 가장 탐욕스런 이기일 뿐이었다.
나라의 성장은 내 신분상승과 재산형성의 핑계였을 뿐이었다.
우리가 만들었노라고 자랑스러이 보이고 싶어한
이 사회는 결국 거대한 분뇨 덩어리였다.


불행하게도 개인의 부의 총합은 국가의 부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개인의 부란 더해질 수 있는 어떤 스칼라 량(量)이 아니며,
그것을 더하려는 행위 자체가 궤변이다.
- 플라톤, 데카르트, 로크, 케네 -


미네르바는 오늘 나를 거울 앞에 서게 한다.
거울 앞에 서있는 모습은 미네르바이다.
나는 삼십년전으로 돌아가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K...

넌 2반이었지, 이과반.
담임이 오래 전 돌아가신 수학 선생님...
난 문과반이었지만 제일 좋아하던 분이었지.
제일 좋아하던 과목이었고...
넌 기억나니, 그 시절이?


* * *


이것이 내가 아는 미네르바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가장 비밀한 곳에서 들려오는 소문이다.


미네르바가 노란 토끼의 미래를 이곳에 예언해야 했듯이
나는 미네르바의 과거를 이곳에 증언한다.
왜?
미네르바의 현재는 판도라의 상자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만일 미네르바의 신분이 이 정권에 의해 폭로된다면,
그것은 바로 이명박 강만수와 그 수하 한나라당이 내세워왔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이데올로기가 그 순간 몰락하며,
이 정권 자체가 파멸의 헤어날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말한다.
왜?

K는 이 정권의 존립이유와 권력유지의 동인으로 삼았던
1% 상위층 중의 상위에 속하는 0.1% 극상위층이기 때문이다.
극상위층의 대표적인 인물 K가 미네르바의 필명으로
일부 상위층에게 특혜를 줌으로써 경제를 살리겠다는
수탈주의 정책은 정책이 아니라

완전한 개.사기이며 날.강도질임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그런 이데올로기의 정강 위에 세워진
한나라당 세력의 정치적 존재 자체는 허구일 뿐 아니라
국민 전체와 국가에 대한 죄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절대왕조와 중금주의의 야합에 불과한
소위 공급주의 친기업정책,
무한경쟁 약탈경제를 내세운 시대착오적 신자유주의,
교육의 상업화와 룸펜 부르조아지들의 천박한 귀족화,
복지와 후생과 군비의 감소,
그에 따른 국론의 분열과 국력과 국방의 쇠퇴,
실용주의를 빙자한 맹목적이고 고립적인 사대주의,
게다가 오만한 독재와 언론의 독점...
이 모든 것은 국가 파괴를 구성하는 죄목일 뿐이다.


소망교회 장로정권이 절대 충성과 복종을 맹세했던
돈의 신(神)들 중에서도
가장 풍요하고 가장 지혜로운 신 미네르바가
나를 위한 너희의 예배는 신성모독일 뿐이라며 분노한다.
너희의 주인인 0.1% 부자는
너희들 아랫 것 0.9% 졸부들의 패악한 정치를 부정한다.
너희가 경제를 빙자하여 국민에게서 강탈한 장물들을
나에게 뇌물로 바치려들지 말라.
그것은 나를 위함이 아니며,
기업가를 위함도 노동자를 위함도
국부를 위함도 국민을 위함도 아니며,
다만 국가를 욕되게 함이라.


기회주의 기득권자들이 국민을 경쟁의 구렁텅이로 몰아가서
그들이 영구독점하는 시장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 내세울
그 누구보다도 완벽하며 이상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얼굴 K,
일류학교 일류직장 일류기업의 일류코스를 모두 밟은
초글로벌 리더 최고선진 CEO의 얼굴인 K는
이제 기생충 계급의 일류선진국 데마고지가 숨기고 있는
음모를 폭로하기 위해 얼굴 없는 미네르바로 돌아왔다.
이 정권이 미네르바의 가면을 벗기려 함은
이 정권 스스로의 손으로 아포칼립스 제7의 봉인을 뜯어
한 때 마리 앙뜨와네트의 가증스런 무식을 단두했던
그 시퍼런 날이 정권의 목 위에 떨어지도록 자초하는 짓이다.


그러므로 이 정권이 택할 길은 오직 하나...
미네르바와 국민들 앞에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것이다.
무조건 잘못했으니 살려만 달라고 무릎 꿇고 애원하는 것이다.
오만과 아집이 과연 목숨보다도 소중하지는 않겠지.
국민의 안녕과 따라서 정권의 생명이라도 부지하려면
이명박과 강만수는
국가의 부도를 맞기 전에 정권의 부도를 자백해야 한다.

숙주(宿主)가 죽는다면 기생충도 따라 죽어야 된다는
상식 쯤은 물론 알고 있겠지.
이 정권의 추종자들이 자기 생존의 본능까지 버릴 정도로
최소한의 이성 마저 잃고,
감히 미네르바와 국민들에게 대항하리라고 상상할 수 없지만...
그래도 소망교회 이명박 강만수 광신장로들이
성서의 억지해석을 바탕으로 패륜목사들의 꾐에 혹하여
운명을 그르칠까봐 조금 염려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나는 이 사악하고 탐욕한 장로정권의
자멸에의 충동을 구태여 막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A Dieu!


원문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396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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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길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