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의 휴가를 맞이해서 일본의 자연을 보고 싶었던 참에 모처럼 도쿄를 벗어나서 하코네에 1박2일로 다녀왔다. 그때의 기억들을 올려본다.

원래의 일정은 당일 일찍 출발해서 저녁 늦게 집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원체 둘 다 게을러서 점심때 쯤 신주쿠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하코네 프리패스가 2일권과 3일권뿐이라 그냥 마음 느긋하게 출발했다. 2일권에 일인당 5,000엔(어른)으로 하코네유모토 왕복을 기본으로 하코네 지역의 등산버스, 등산전차, 등산케이블카, 로프웨이, 유람선, 고속버스등 거의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패스권이다.

신주쿠에서 하코네유모토(箱根湯本)까지 가는 오다큐선이 열차의 종류도 많고 목적지도 달라 유의해야 한다. 우리도 기분이 업되었는지 수다를 떨다가 사가미오노(相模大野)역에서 갈아타야 할 것을 그냥 지나치는 바람에 후지사와( 藤沢)까지 갔다. ㅠ.ㅠ
한국으로 말하자면 4호선 금정역에서 천안으로 갈 것을 안산까지 갔다고 해야하나? -.-
게다가 복잡한 환승과 열차종류때문에 우왕좌왕 1시간 30여분을 소비해서야 겨우 오다와라(小田原)역까지 도착할 수 있었고 등산전차를 이용해 하코네 여행의 시발점인 하코네유모토로 당도한 시간이 오후 3시 반쯤이다. 참으로 게으르다. ㅎㅎ

1. 모토하코네(元箱根)
일반적인 가이드에서와 달리 거꾸로 여행을 시작했다. 하코네유모토에서 등산버스를 타고 모토하코네에 내렸다. 아시호수가 젤 먼저 눈에 들어오고 하코네신사의 도리이(하늘천자 모양의 붉은색 신사입구)가 시선을 잡아끈다. 며칠전에 있었던 아시노코스이마츠리(芦ノ湖水祭)의 흔적으로 마을 곳곳에 축제등이 아직도 걸려있었다. 간단히 사진을 찍고 삼나무숲을 거쳐 하코네마치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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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젤 가고 싶었던 삼나무 숲은 예상외로 짧아 아쉬었다. 원래는 3배 이상 긴 길이었데 무슨 공사비를 메꾸기 위해 규모가 줄어 들었고, 더군다나 앞으로도 수령 350여년의 삼나무 30%가 고사위기에 있어 지금 규모 또한 3분의 1로 줄어든다고 한다.

2. 온시하코네 공원(恩賜箱根公園)
2Km의 삼나무 숲 삼림욕을 거쳐 하코네마치로 걸어가다 예정에 없던 공원을 찾았다. 한국식으로 발음하면 은사하코네공원인데 황족의 피서와 외국내빈을 위한 별궁이 있었던 자리이다. 그런만큼 아시호수와 후지산의 전경이 잘 보이는 혜택받은 경치를 자랑한다. 서양관과 일본관을 중심으로 관사등이 있는 큰 규모를 갖추었다가 두 번의 큰 지진으로 모조리 무너져 자료에서만 전해지고 있고 지금 재건한 건물은 서양관을 흉내내어 전시관과 휴게실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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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전시실을 둘러 보던 중 낯 익은 인물이 보인다. 이토 히로부미!
별궁을 재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모양이지만 한국인의 관광객에게는 묘한 감정을 유발시키는 인물.

3. 하코네세키쇼(箱根関所)유적
온시하코네공원에서 호반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검은색의 옛날 건물을 만날 수가 있는데 하코네세키쇼다.
옛 하코네는 총기의 유입과 볼모로 잡아놓은 지방 호족의 처자가 외부로 나가는 것을 막으려고(입총출여) 철통같은 경비를 위해 검문소를 세웠다. 통행증 없이 무단통과를 시도하면 무조건 사형되었다던 당시의 생활상을 소개하는 자료와 마네킹이 있는 뒷터가 복원되어 있고 하코네세키쇼의 자료와 제도를 소개하는 자료관이 별도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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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쇼유적지앞에서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는데 정말 왕창 사고 싶을 정도로 예쁜 것들이 많다. 특히 하코네 특산품인 요세기자이쿠(よせぎざいく)-寄木細工은 그 섬세하고 부드러운 색깔들이 하코네관광지 곳곳에서 자태를 뽐낸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을 정도.

4. 하코네마치(箱根町)
검문소를 지나 20여분 걸어서 하코네마치에 들어왔다. 워낙 늦게 츨발했고 어디든 꼼꼼히 들러 보는 내 성격으로 인해 어느 덧 저녁기운이 드리워져 있었다.
정말로 작은 마을. 관광객이 아니라면 한국에서도 강원도 정선의 사북쯤된다고 할까? 설마 일본인데 그럴 정도일까? 의문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로 꼭 한 번 가보라. 특히 저녁에 해가 떨어지면 사람보기 힘들다. -.-
일본 사람들은 늦게 장사를 하지 않아도 될만큼 풍족해서 그런가? 비교적 큰 업소인 관광기념품도 그렇고 작은 구멍가게와 식당들도 그렇고 바로 철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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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준비없이 출발했으니 숙소인들 예약했겠는가? ㅠ.ㅠ
일부러 월요일에 떠났음에도 일본여행의 백미인 료칸(旅館) 예약을 안 해 온천과 맛있는 식사는 언감생심, 민박(일본에서는 民宿)을 알아보러 하코네마치 마을을 다 돌아다녀야 했다. 싼 민박을 알아봤는데 의외로 외국인은 안 받아들이려는 눈치여서 료칸을 갔더니 1인당 4만엔이란다. -.-;
온 마을을 헤매고 다니다가 어둠은 짙어지고 사람들은 안보이고 문들은 다 닫히고.. 서서히 불안감이 엄습. 그러다가 마을 끝 쪽에서 펜션 간판을 발견하여 일단 잠자리는 해결해야겠기에 그냥 가격이고 뭐고 숙소로 결정했다. 잉 싸다. 일인당 5,300엔쯤.
가격이 좀 싸다했더니 저녁식사가 끝났고 아침식사도 없다고 한다. 당연한거 아닌가?
나중에 알고보니 한국에서의 펜션이라면 주방이 있어 조리가 가능한데 일본식의 펜션은 료칸같이 사전에 예약을 해서 식사도 주인이 차려준단다.

어쨌든 잠자리는 해결되었으나 이젠 배고픔이 문제.
7시가 조금 안되었음에도 마을 상점들은 문 내린 것 같고 편의점 또한 모토하코네에 있던 세븐일레븐이 유일하다. 거기다 길거리는 너무 한적하고 무섭다. ㅜ.ㅜ

그래도 나가 보기로 했다.
헉... 일본 시골 마을.. 무섭다.
낮에 보았던 빨간 축제등은 갑자기 한국식의 장례등으로 생각되어지고 불빛도 뜸하다.
그러다가 사진에서 보았던 가게를 찾았던 것이다. 일반 구멍가게도 아니고 개인이 몇가지 상품만 팔던 곳. 빵도 없었고 맥주도 없었다. 겨우 일본식 맛없는 컵라면만 구하고 펜션에서 물 끓일데도 없어 주인에게 사정을 요청하여 친절히 추가요금없이 뜨거운 물까지 얻을 수 있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무허가 점포라 주류를 취급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당시 우리에게는 주변과 마음이 시커멓게 타들어 갈 때 유일하게 빛을 내 주었던 곳이라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Posted by 길동이